Essay 2012. 6. 13. 14:18

새로운 로드스쿨러(Road Schooler)의 이야기




  난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 대학이라는 (결국 인간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의 가치가 있고 없음을 결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학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졌던 시대는 지났다. 소위 sky라고 불리우는 마치 수험생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에 있는 듯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고민있는 자퇴와, 고졸의 학력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몇몇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낸 흐름이 이런 시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홈스쿨링(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는 재택교육)에 대한 책을 읽는 중에 궁금증이 생겨 웹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재밌는 단어가 있다.



로드스쿨러


: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공간을 넘나들며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또는 스승이 있는 공간이면 세상의 모든 곳이 배움터라는 생각을 하는 자기주도학습자들이 스스로를 명명하는 이름.



  이 단어를 알고 나서 나도 나 스스로를 로드스쿨러로 인식해보았다. 사실 나는 로드스쿨러가 지칭하는 연령대나, 포함하는 범위에서는 많이 벗어난다. 내가 로드스쿨러가 된 시기는 20대고, 학습의 범위라고 한다면 나는 내 인생의 범위 전체를 보고 나를 로드스쿨러라고 인식해보기 시작했다.





20대 로드스쿨러의 이야기


  나는 고졸이다. 서울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여고를 졸업한 이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을 제외한 다른 어떤 자격으로 캠퍼스를 밟아본 적이 없다. 아, 작년에 한 번 있었다. 

나는 그저 내 이야기가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고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수능원서를 넣었는데 가,나,다군 모두 떨어졌다. 그 때 중국에 가 계시던 아빠가 메일을 보내셨다.




  대학이 떨어졌다고 말할 틈도 없이 중국어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 꿈은 중국에서 무언가를 하는 거라는 생각을 중학생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대학교육이 생각보다 내 가치의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은 것도 영향이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강남에 있는 중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서 2년동안 공부하게 되었고, 이 시기가 학업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좋은 선생님들과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학원의 분위기,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고등학생 시절 생기게 된 누군가 시켜서 하는 힘든 억지공부라는 인식을 완전히 깨주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나만의 공부방법을 알게 되기도 했다.


  사실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학원을 다닌 것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독학을 하기 위해 학원을 끊은 시기까지 학업적으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년 중순까지 2년반의 시간동안 매우 힘들었던 시절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길을 걸으면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이 글의 핵심이다.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나는 분명 아빠의 제안으로 이 길을 걷게 되었지만, 누군가 질문을 하면 다행스럽게도 관심분야가 있는 사실로 포장하며 둘러댈 수 있는 어쩌면 운 좋은 로드스쿨러였는지도 모른다. 관심분야가 있어서 이 길로 접어들기 쉬웠던 것은 맞지만 내 안에 주도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자신도 없었고 이렇다 하게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이유와 확신이 없었다. 이것이 없으니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정말 그랬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냐고 물으면, 머릿 속이 하얘지고 눈 앞이 캄캄해지고 온 몸이 굳는 물리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 앞가림도 못하는 20대인 나의 처참한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다.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답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그저 내 삶을 묵묵히 걸어나갔다. 즐겁고 재밌게 그러나 우직하게 내 삶을 살아나갔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어떻게 이 길을 결정하게 되었든지 내 삶이니까 불평않고 즐겁고 우직하게 살아간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한 길이라고, 남들이 말하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난다고 도망가거나 피할 것도 없었다. 원래 하라면 더 안하는 청개구리 습성은 누구나 있을테니까. 

  실은 이게 무서운 거였다. 회화 1년 우직하게 배우고, 신HSK공부해서 5급까지 획득하고, 지금은 내 재능을 키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내 관심분야니까 이렇게 우직하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인데 생각해보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원래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건가 싶다. 잘난 척이 아니라 내 꿈에 대한 마음을 중학생 때부터 지켜내면서 어떤 상황이 되든 그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내가 살면서도 이렇게 가능한가 싶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이 작년에야 나를 보며 그런다. "이제 대학을 다닐 자격이 되는 것 같아" 학교를 안 다니는 사람에게는 학교를 다니는 사람보다 더 진득하게 자기만의 길을 걸을 줄 알아야 한다. 주도성이 더 강해야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삶을 살다보니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라는 질문에 조금씩 당당해지고 나를 아찔하게 만들었던 그 느낌은 사라지고 있다. 

  

  나는 내 공부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 시기가 남들이 보기에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것과 같지만, 나에게는 이 길이 나를 발전시키고 나를 더 진득하게 내 길을 걸을 줄 아는 사람으로, 주도성이 강해져서 내 마음을 잘 지켜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내 인생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이 질문에 대한, 이 시기를 살고 있는 나의 대답이다. 


  나도 한 때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여전히 오랜 기간 그 답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이 길을 걸었던 것보다 더 모진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의 이런 일탈은 나름 가치가 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 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