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2014. 4. 9. 00:47

나도 숨쉬고 싶어 (인공잔디/AKMU) :: Hint





#1 AKMU의 노래


 지난 7일 공개된 악동뮤지션의 첫번째 앨범. 

그 안에 수록된 노래 중에 "인공잔디"라는 곡이 있어. 그 중에 이런 가사가 있지. 


"나도 숨쉬고 싶어. 비를 삼키고, 뿌리를 내고 싶어. 정말 잔디처럼."


 해도 물도 필요없고, 시들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작 살아있지 않은 인공잔디가 시들어가도 좋으니까 진짜 잔디를 부러워하며 자신도 숨을 쉬고, 살아있고 싶다는 이야기를 풀어낸 곡이지.



#2 숨쉬는 게 뭘까


 숨을 쉰다는 게 뭘까.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일까. 뭘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너는 숨쉬고 사니? 생물학적인 거 말고, 인공잔디처럼 사는 거 말고, 사회의 눈치나 부모님의 기준에 숨막혀 사는 거 말고, 숨쉬고 살고 있냐고.



#3 Hint


 사실, 우린 살다 보면 숨막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 어떤 상황들이 내 뜻과 상관없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갈 때 내 숨통을 조여오는 느낌을 많이 받지. 요즘 너희들을 생각하면 아마, 진로나 대학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 그냥 나 하나 감당하기도 힘든데 부모님 눈치도 봐야되고, 또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는, 부모님과 갈등이 있기도 하고 혹은 재정적이든 심리적이든 부모님의 지원을 받기도 하고. 


 그런데 각자의 상황이 있겠지만 모두에게 내가 경험했던 것을 나누면서 이런 우리의 숨막히는 상황에서 숨쉬는 게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



#4 어른이 되어가기


 그냥 나이가 찬 어른 말고, 진짜 우리 생각도 마음도 어른이 되어가는 거야. 아마 아직까진 감을 잡긴 힘들텐데. 내 이야기를 들어봐.


 는 학교를 가지 않았어. 사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내가 원하지 않는 학과로 원서를 넣었는데 다 떨어졌지. 그런데 그 때 해외에 나가계셨던 아빠가 메일을 보내신거야. 이제 너도 성인이니 네가 공부하고 싶은 거 공부하라고. 


 래서 학교 대신 평소에 공부하고 싶은 걸 공부하기 시작했어.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걸 공부할 수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지. 분명 난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하지만 이때부터 나에게 꼬리표가 붙었네. 모든 사람들은 내게 "학교 왜 안 갔어?"라고 물어보기 시작했어. 

 어떤 느낌이냐면,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내 몸 속의 모든 생물학적 움직임이 한 순간에 멈추는 느낌? 왜냐면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거든.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에 깊게 생각도 안해보고 덥석 선택한 길이었으니까.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은, 내 삶에 가치가 있기를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심지어 그 사람의 가치가 대학의 간판과 스펙으로 결정되니까. 난 그 기준을 포기한거지. 


  힘들었던 것 같아. 내가 왜 학교를 가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답할 수 있기 전까지는 나는 내 삶을 증명해낼 방법이 없었어. 그런 시간을 3,4년 정도 보낸 것 같아. 스물넷이 지나고나서야 내 삶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된거지. 


 가 말하고 싶은 건, 나는 4년의 시간동안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는 거야.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계획없이 선택한 삶이었기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었지만. 



#5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서 의연하게 책임질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실 진로라는 게 평생 고민해야하는 거라지만, 첫걸음을 걷는 너희들 입장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는 가장 첫번째 경험일텐데. 삶이라는 게 언제든 더 옳고, 좋은 것으로 돌이킬 수 있는 것이지만 모두가 그것을 추구해도 그게 참 힘들지. 


 들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을거야. 잔인해보일 수 있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 삶을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진로를 생각했을 때나 두 경우 모두의 상황에서) 겪게 되는 감정적 무게와 경험적 무게는 결국 본인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지. 부모님이나 친구 등 누군가 대신 겪을 수 없는 부분이야.

 나는 이런 경험이 있어. 내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같았지만 그 진로의 방향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나는 무언가 큰 두려움이 있었어. 어쩌면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린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는 굉장히 큰 부담이었던 것 같아. 대학을 안 간 내가 조금만 다른 걸 생각해도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걱정했었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기 싫었던 거지. 그 두려움을 견뎌내는거야말로 내가 선택한 삶의 무게를 견디고 책임지는 과정이었어.  


  나처럼 누군가 너의 진로의 방향을 바꾼 것에 대해 안다고 해서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 "그래야 할 필요가 있어? 그들이 너의 진로를 알게 되어서 그들이 널 걱정하는 것을 보며 네가 불편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해?" 네가 그 삶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으면 되는거지. 그걸 책임지지 못했을 때가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타이밍인거지. 나는 어쩌면 책임지지 못한 삶을 여기저기 많이 벌여놨었어. 하지만 너는 할 수 있을거야. 

 누군가 너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어. 부모님과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무관심 속에 방치될 수도 있어. 그 안에서 너는 여러 감정을 겪겠지만 그 안에서 너는 어떻게든 결국 네가 살아야 할 삶에 대해서 선택이라는 걸 하게 될 거야.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되겠지.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야.


 실 생각해보면 요즘은 대학을 갈 것인가 자체를 두고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 같은데, 자신의 삶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하지만, 특목고든 자사고든 대학이든 취업이든 어떤 사람이 되어가든 어디든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자신이 살아갈 삶을 꾸려가는 너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어.





#6 인공잔디는 

 사실 인공잔디는 해도 물도 필요없고 시들지도 않는 삶이지만, 밟혀도 아무렇지 않은 삶이지만 어쩌면 삶을 책임져서라도 살고 싶었던 거겠지.










추신+

 점수맞춰서 관심도 없는 학과 가지 않길 바라. 많은 대학생들이 점수맞춰 왔다가 관심도 없고 감당도 안 되서 그 때부터 꿈이 뭔지 찾기 시작하는 대학생 언니오빠들 많아. 그 때 찾는 건 여러모로 힘들어. 너희들은 이런 쳇바퀴 굴리지 않기를. 그 시간들 통해 배우는 게 있겠지만. 다소 쓰라린 경험일거야. 물론 수능 보고나서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좋은 것을 더 많이 경험하길 바라. 그리고 삶에 대해 책임이고 뭐고 불평만 가득하게 된다면 그 상황에서 네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해봐. 도움이 될 거야. 


Essay 2012. 6. 13. 14:18

새로운 로드스쿨러(Road Schooler)의 이야기




  난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 대학이라는 (결국 인간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의 가치가 있고 없음을 결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학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졌던 시대는 지났다. 소위 sky라고 불리우는 마치 수험생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에 있는 듯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고민있는 자퇴와, 고졸의 학력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몇몇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낸 흐름이 이런 시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홈스쿨링(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는 재택교육)에 대한 책을 읽는 중에 궁금증이 생겨 웹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재밌는 단어가 있다.



로드스쿨러


: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공간을 넘나들며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또는 스승이 있는 공간이면 세상의 모든 곳이 배움터라는 생각을 하는 자기주도학습자들이 스스로를 명명하는 이름.



  이 단어를 알고 나서 나도 나 스스로를 로드스쿨러로 인식해보았다. 사실 나는 로드스쿨러가 지칭하는 연령대나, 포함하는 범위에서는 많이 벗어난다. 내가 로드스쿨러가 된 시기는 20대고, 학습의 범위라고 한다면 나는 내 인생의 범위 전체를 보고 나를 로드스쿨러라고 인식해보기 시작했다.





20대 로드스쿨러의 이야기


  나는 고졸이다. 서울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여고를 졸업한 이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을 제외한 다른 어떤 자격으로 캠퍼스를 밟아본 적이 없다. 아, 작년에 한 번 있었다. 

나는 그저 내 이야기가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고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수능원서를 넣었는데 가,나,다군 모두 떨어졌다. 그 때 중국에 가 계시던 아빠가 메일을 보내셨다.




  대학이 떨어졌다고 말할 틈도 없이 중국어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 꿈은 중국에서 무언가를 하는 거라는 생각을 중학생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대학교육이 생각보다 내 가치의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은 것도 영향이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강남에 있는 중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서 2년동안 공부하게 되었고, 이 시기가 학업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좋은 선생님들과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학원의 분위기,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고등학생 시절 생기게 된 누군가 시켜서 하는 힘든 억지공부라는 인식을 완전히 깨주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나만의 공부방법을 알게 되기도 했다.


  사실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학원을 다닌 것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독학을 하기 위해 학원을 끊은 시기까지 학업적으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년 중순까지 2년반의 시간동안 매우 힘들었던 시절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길을 걸으면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이 글의 핵심이다.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나는 분명 아빠의 제안으로 이 길을 걷게 되었지만, 누군가 질문을 하면 다행스럽게도 관심분야가 있는 사실로 포장하며 둘러댈 수 있는 어쩌면 운 좋은 로드스쿨러였는지도 모른다. 관심분야가 있어서 이 길로 접어들기 쉬웠던 것은 맞지만 내 안에 주도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자신도 없었고 이렇다 하게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이유와 확신이 없었다. 이것이 없으니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정말 그랬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냐고 물으면, 머릿 속이 하얘지고 눈 앞이 캄캄해지고 온 몸이 굳는 물리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 앞가림도 못하는 20대인 나의 처참한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다.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답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그저 내 삶을 묵묵히 걸어나갔다. 즐겁고 재밌게 그러나 우직하게 내 삶을 살아나갔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어떻게 이 길을 결정하게 되었든지 내 삶이니까 불평않고 즐겁고 우직하게 살아간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한 길이라고, 남들이 말하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난다고 도망가거나 피할 것도 없었다. 원래 하라면 더 안하는 청개구리 습성은 누구나 있을테니까. 

  실은 이게 무서운 거였다. 회화 1년 우직하게 배우고, 신HSK공부해서 5급까지 획득하고, 지금은 내 재능을 키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내 관심분야니까 이렇게 우직하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인데 생각해보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원래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건가 싶다. 잘난 척이 아니라 내 꿈에 대한 마음을 중학생 때부터 지켜내면서 어떤 상황이 되든 그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내가 살면서도 이렇게 가능한가 싶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이 작년에야 나를 보며 그런다. "이제 대학을 다닐 자격이 되는 것 같아" 학교를 안 다니는 사람에게는 학교를 다니는 사람보다 더 진득하게 자기만의 길을 걸을 줄 알아야 한다. 주도성이 더 강해야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삶을 살다보니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라는 질문에 조금씩 당당해지고 나를 아찔하게 만들었던 그 느낌은 사라지고 있다. 

  

  나는 내 공부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 시기가 남들이 보기에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것과 같지만, 나에게는 이 길이 나를 발전시키고 나를 더 진득하게 내 길을 걸을 줄 아는 사람으로, 주도성이 강해져서 내 마음을 잘 지켜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내 인생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이 질문에 대한, 이 시기를 살고 있는 나의 대답이다. 


  나도 한 때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여전히 오랜 기간 그 답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이 길을 걸었던 것보다 더 모진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의 이런 일탈은 나름 가치가 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 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Essay 2012. 5. 21. 00:18

시사IN "북 치고 싶어 사고 못 쳐요" 경북 영주 영광중학교 난타동아리



  청소년들의 학교생활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청소년들의 자살 사건이 이어지면서 최근 성적이나 대학 뿐만이 아닌 청소년들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서서히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평범하게 학교를 잘 다니는 아이들도 걱정이 되는데 소위 '기록'이 있다고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있는 한 사례가 있다.





  경북 영주 영광중학교 난타동아리는 황재일 교사가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집중할 것을 찾아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문제를 일삼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북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려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생각보다 더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다. 


  그 전에 먼저 황 교사가 이 아이들에 대해서 끊임없는 믿음을 보였고 이 진심이 아이들에게 통한 것으로 보여진다. 모두가 문제아라고 관심 갖지 않고 선도의 대상이자 돌보지 않는 그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관심을 보이고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것을 통해 영광중학교 학생들은 성장해왔다. 절도죄, 금품갈취, 폭력 따위의 '기록'이 있는 학생들은 어쩌면 최선의 교육철학일지도 모르는 황교사의 대안을 따라 전학 대신 북을 치기를 선택했고 이것이 수많은 개인과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기록이 있는 문제아들로 구성된 난타동아리의 공연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오해를 풀 만 했고 아이들도 그것을 즐기는 듯 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연습에 임하기 때문에 그 노력들이 공연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황교사의 끊임없는 신뢰와 관심으로 이전에 알 수 없었던 가치들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난타동아리의 활동을 통해서 성취감,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 꿈을 찾게 되었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의지까지 생겼고 가해자였던 아이들이 학교폭력 방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신뢰와 관심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담배피고 술 마시고 PC방, 당구장을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언제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관심가져 준 적이 있었나? 혹은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해 본 적이라도 있었나? 그 아이들도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다음세대이다. 단순히 그 아이들의 겉모습만 보고 그 아이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고 심지어는 무관심했던 우리의 모습들을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황교사는 그 아이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대안을 만들어냈다. 그에 따른 열매가 있었고 이 사례는 전국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단순히 겉모습이 보기에 안 좋다고 해서 우리가 마땅히 가르치고 관심가져주어야 할 아이들을 향해 거리감이라는 장벽을 깨지 못한다면 1년이라도 더, 먼저 세상을 산 우리의 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 아닐까? 관심과 믿음, 아이들에게는 이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Essay 2012. 5. 20. 22:00

"일진은 권력의 맛도 알고 권력 유지 욕구도 강해"








  10대들의 학교폭력 문화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일진문화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담을 읽었다.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권력의 맛'을 아는 일진들의 문화에 대해 사회가 나서 교육환경과 교육철학을 바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사회에게 준 영향과 관계없이 그동안 고수해 온 특정 시스템과 구조 속에서 교육했던 모든 것을 그 쓴뿌리까지 모두 뽑겠다는 것이고 정부와 사회가 그것을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지만 지금 시점에서 가장 큰 해결과제는 대담의 맺음말처럼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라기 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폭력과 자살 건수는 늘어나고 있는데 시스템과 구조가 바뀌기만을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다음세대에 대한 문제이다. 각 분야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가진 누군가 움직여야 한다. 






  교내라면 '올바른 교육 철학'을 가진 선생님이 움직여야 한다. 실제 경북 영주 영광중학교에서 한 선생님이 자신만의 대안을 만들어냈고 이런 아이들의 문화와 생각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다. 





학생이라면 We Believe You 운동의 움직임과 같을 것이고, 


  굳이 교육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의 종사자라면 그 분야에 맞는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ssay 2012. 5. 18. 15:02

[서평] 중국 읽어주는 남자, 박근형



중국 읽어주는 남자

저자
박근형 지음
출판사
명진출판사 | 2010-06-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중국의 과거ㆍ현재ㆍ미래가 한눈에 보인다!중국을 테마로 한 퓨전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 책은 30대의 젊은 인문학자이자 저술가가 중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인문학적인 프레임으로 다양한 분야를 다룬 '중국을 테마로 한 퓨전 인문서'이다. 목차의 큰 줄기만 봐도 저자의 프레임이 보통 중국을 보는 관점과 다름을 간단히 알 수 있다. 


1장ㅣ새로운 프레임으로 들여다보기

2장ㅣ중국을 알려면 '한족'의 존재를 이해하라

3장ㅣ한자와 중국어의 별난 관계

4장ㅣ인문학적 프레임으로 본 중국 경제

5장ㅣ'소프트 중국' 이해하기 

6장ㅣ한국은 중국인의 역사 왜곡을 탓하고 

        중국은 한국인의 역사 왜곡을 탓한다

7장ㅣ한국인과 중국인이 서로 '쿨'하게!


인문학적인 프레임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다루었다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중국의 이야기들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령 나온다고 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고 온전히 '인문학적 프레임'으로 모든 글을 다루고 있다. 맺는 글에서 저자만의 고충을 이야기하는데 목차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에게 민감한 역사 왜곡의 문제를 다룰 때는 객관적으로 글을 쓰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이 책은 중국에 도전하고 싶은 젊은 한국인에게 새로운 시각의 동기부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쓰여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맺는 글과 참고문헌까지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의 내용이 분명히 가치있고 이전과 다른 관점이라는 점에서 많은 '다름-같지 않음'을 느꼈고 분명 강력하게 새로운 시각의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다른 모든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 그렇듯이, 중국과 관련된 수많은 책들을(한 번을 언급해도 책 한 권을 참고했다) 참고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정도의 새로운 시각의 동기부여를 전해주기 위해서 그 정도의 참고문헌으로 오히려 보편성이 없는 글로 전락했을 만한 이야기들을 살려냈고 저자의 전달하고자 하는 관점과 동기부여(지식과 정보 포함)를 위해 노력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저자의 국적을 감안했을 때, 객관성과 창조성(보편적이지 않은 관점을 보편성 있게 표현한)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중국의 과거의 역사들을 보며 마음이 아프기도 먹먹하기도, 가끔 멘탈붕괴가 오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각을 접하고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접근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중국에 도전하고 싶은 한국인'으로서 중국을 더 많이 이해하고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Essay 2012. 4. 10. 23:53

Read it. 산만한 아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The Edison Gene) by Thom Hartmann



세상을 바꿀 너의 이야기는 이제 곧 시작이야


이야기는 지난 2011년 여름부터 시작된다. 


너를 알게 된 지 1년이 되어서야 너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구나. 

(나의 1년을 묶어든 이 나의 게으름을 떠나보내며)






내가 좋아하는 한 친구가 있다, 내 사랑스런 멘티. 

(개인을 존중하여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 친구를 다른 눈으로 본다. 

하지만 이 친구는 작년부터 많은 변화를 경험했고 본인이 그렇다고 시인한다.



이 친구는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한다.

떡볶이, 삼각김밥 먹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전주비빔 삼각김밥.

무엇이든 자신이 즐거우면 목소리가 커지고 높아진다, 즐겁게.

만나면 먼저 즐겁게 "쌤~~> <"하고 즐겁게 맞이한다.

패션디자인을 공부할 지, 인테리어디자인을 공부할 지 고민한다.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잘 이끄는 멋진 리더십이 있다.

그래, 별 다를 것 없는 17세



근데 참. 그게 그렇더라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 친구를 ADHD라고 부르더라.


내가 완연한 고등학생 친구로만 소개해서 잘 모를지도,

그러나 사실은 그렇다.

 


뭐 어찌됐든 나를 궁금하게 만든 이 친구에 대해서 공부해보고자 한다.

이 친구를 그렇게 부르는 것조차 이 친구를 존재로 보는 나는 슬플 뿐이지만.

이 친구를 잘 알 수 있다면야, 그러면 곧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더 잘, 도울 수 있겠지.






Essay 2012. 2. 19. 01:03

+ RISE UP JEJU




# EPILOGUE

분기와 시즌별로 각 나라마다 많은 교회와 단체에서 단기선교와 워십투어 등 많은 집회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그 수많은 프로그램에서도 그것과 상관없이 어떻게 보면 정말 '무식하게' 길거리에 무작정 나가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곳은 아마 라이즈업무브먼트 말고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무서운 점은,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를 알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 방법에 자신이 있다)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천국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못 걷는 사람이 상상할 수도, 꿈꿀 수도 없었던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근본적인 필요를 알아야 하고, 이것에 대해서 제대로 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HOPE
"누군가에게는 그저 잠깐 왔다가는 것일지 몰라도, 여기 사는 사람에게는 생존의 문제에요"


06년, 인도단기선교 때 선교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 전혀.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하나님의 진심을 들은 사람들의 그 이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에 대해서 소망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 하나님은 당신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세우셔서 제주 땅의 영적인 판을 뒤집어 엎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다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대통령이 와도 대신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히 그렇게 일하신다. 내가 RISE UP JEJU를 통해 기대하는 바이다.







# PAST, NOW AND THE FUTURE

우리는 지금 오해를 하고 있다. 제주 땅은 아름답지만, 슬픈 땅이다. 역사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 제주도민들의 이야기이다. 제주는 관광산업이 활발하다. 하지만 관광산업이 제주도민들의 것이 아니라 모두 기업들의 차지이며 실제로 제주도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오직 10개의 가문만이 제주도 전체 권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고착화 되어있다. 제주도의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고등학교 40개, 중학교50개. 고등학교는 거의 실업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진작 육지로 나갔고 나머지는 낙오자로 밤마다 서울의 신천, 천호동과 같은 제주시청 앞동네를 전전하며 아무런 소망과 희망없이 살아간다.

내가 기대하는 바는, 이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제주 땅의 영적인 판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직접. 한국인이라는 메리트도 없다. 해외선교지에서 늘 하던대로 free concert~ rock festival~ 할 수 없다. 직접 복음을 전해야 한다. RISE UP JEJU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진정성 있는 고백들이 메신저로 작용되어져야 한다. 







 
Essay 2012. 2. 16. 22:53

다음세대에 대한 질문 몇 가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페북을 한다. 여러 종류의 이야기거리들로 페북은 북적인다. 공부,삶, 수다, 좋아하는 것, 이 아이들의 가능성, 이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그 무언가. 자신들의 속얘기를 거짓없이 털어낸다. 다른 친구들은 공감이라는 것을 하고,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위로를 하고, 얻는다.
 무엇이 보이는가? '아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잘 배우며 살고 있구나'? 글쎄, 그렇게만 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청소년은 무엇인가?'라는 것과, '사회 속에서 청소년은 고민되어지는 존재이며, 그럴만한 가치가 인정이 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첫번째,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청소년은 무엇인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속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장면 속에서 자극이 되어 필자에게 묻게 만든다. 그들의 글 속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외로움과 거절감이었다. 이것이 하루 이틀의 글로 제한되어지는 특징이 아니다. 모든 글에서 아이들은 '나 좀 봐줘요. 외로워요.'라고 말하고 있다. 또래 친구들은 이 사실을 알고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지는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이와 같이 사실, 누구나 다 외롭다. 필자도 외로운 시간을 보냈고, 누군가의 관심을 받으며 살고 싶어서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에 매일같이 생채기를 내며 살아왔던 시절이 있었다. 그 누가 외롭지 않을까. 사람이라면 다 외로움을 느낀다. 모두가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에 매일같이 생채기를 내며 살아간다.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 속에 '빈 공간'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펙과 돈을 가지고 업적을 남겨 그 빈 공간을 채우려고 어떻게든 몸부림 쳐 본다. 그래도 욕망이라는 것만 쓴뿌리마냥 그 속에 더 박히게 될 뿐, 그 어느 것도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없다. 욕망이라는 쓴뿌리가 아무도 모르게 더 깊게 뿌리박힐수록 그저 사람들은 더 이기적으로 변하고 인생(人生)이 경쟁구도로 치닫는 것 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그 결과는,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 거라 생각한다. 모두가 어쩌면 서로에게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과도 같은 사회에서 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경쟁구도를 달리면서도 또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보호하며 사회에서부터 자신들을 보호했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이 빈 공간을 채울 수 없으니 그저 살아왔던대로 또 반복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정확한 답이 아닌 것을 찾거나, 답을 찾지 못하면 이 굴레는 또 눈덩이처럼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두번째, 사회 속에서 청소년은 고민되어지는 존재이며, 그럴만한 가치가 인정이 되고 있는가?
 슬프게도 지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둘 다 '아니다'다. 첫번째 질문과 비슷한 대답이 될 수 있겠다. 욕망이 그 근원이 되어지는 것인데, 다들 욕망이라는 것에 집중하기 바빠 대단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누구나 눈에 보여지는 대답은 지역사회, 혹은 회사의 발전이라고 말은 한다. 그렇게 뒤로는 (빈 공간을 채울 수 있을 거라 오해하고) 욕망을 채우며 당신들의 미래를 살아갈 세대에 대한 올바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들이 그토록 온 마음 다해 원하는 지역사회와 당신들의 회사의 발전을 이어나갈 다음세대에 대하여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것들이 사회에 만연해있고 팽배해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무관심과 올바르지 않은 관심들이 청소년들을 사회 속에서 더 외롭게 만들고 그들의 무리에서 그들 스스로 사회로부터 보호하며 살게 하고 있다. 마치 부모님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성공해서 행복하기 원하는데 청소년이라는 '사람'은 실은 그것으로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종국에는 같은 답이 나왔다. 그 누구도 자신을 채워줄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컸고 이것은 생각보다 큰 미래의 영역에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거라는 점이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답은 확신하건대, 모든 것에 책임질 수 있을만한 힘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이다.
Essay 2011. 10. 10. 23:49

포스트모더니즘 속 소나무와 감초


북촌은 소나무이다


 안
국역 3번출구, 아직은 아침의 서늘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오전에 우리 일행은 북촌을 향해 출발하였다.

얼마 오래 가지 않아 눈 앞에 보이는 북촌문화센터. 북촌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국어로 북촌에 대해 설명을 하고, 북촌이 어떤 곳인지 북촌문화센터의 처마선이 먼저 프리뷰를 해 주는 듯 하다.




 

비의 색이라고 한다면 이런 색일까. 화려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절제미가 가득한 북
촌의 한옥. 




 

 유명한 북촌8경도 밟아보았다.
북촌의 대표적인 곳을 가장 멋있는 각도에서
찍을 수 있는 장소인가보다.




구름 한 점 없이 높기만 한 하늘,

숨막히게 쏟아지던 가을의 햇빛과 어울리던
기와와 처마들.

우리 옛 선조들의 고고한 기품과 아름다움이 오롯이 살아있음을 볼 수 있었다.





# STORY _ 감초

촌의 곳곳에는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주머니 사정과 우리의 시간적인 제약으로 그 많은 유혹거리들을 이겨내고 열심히 걸어왔건만, 삼청동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찻집에서 우리는 지고 말았다.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감초의 향기를 따라온 것만 같다. 
아메리카노 먹기도 어려운 우리, 그러나 대단한 도전-



전대보탕과 단팥죽
 

쌍화차일줄로만 알았던 십전대보탕.
아이스티 처럼 달달할 것 같은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첫맛의 쌉쌀함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쌍화차의 달달한 맛은 목넘김의 끝자락어디에 아련히 있을 뿐.

 한마디로 "쓰다"


 



 

밤과 생각 인삼등 온갖 좋은것 가득한 단팥죽. 찹쌀로 만들어서 그런지 입안의 감촉은 쫄깃쫄깃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단팥죽의 맛을 잊을수 없어 오랫동안 그리워 할 것 같다.






리가 걸어왔던 북촌은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였고 그네들의 삶 자체였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이 시대에서 잊혀져 가던 향기를 맡아볼 수 있었다. 북촌에는 과거의 한옥들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 곳은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변화하였고 발전하였다. 멈춰있지만 결코 멈춰있지 않았던 북촌.






# EPILOGUE _ 
 

통과 현대의 변주.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우리는 북촌을 걸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어 갔을까? 우리가 두시간 반 남짓 걸었던 북촌에 있던건 무엇일까?

 5000년의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전통 조선시대의 가옥의 화려하지 않으나 기풍있고 단단했던 모습을 보며 우리 선조가 지켜왔던 민족의 얼을 느끼고 내가 서있는 이 곳의 풍류와 멋을 느낄 수 있었다.


수천년간 수많은 이민족들의 침략, 근대 서구 열강 과 일제시대의 그 쓰라린 과정을 무슨 정신으로 이겼는지 내 눈과 마음이 많은 것을 이해하고 담아오는 여행이었다.



루가 다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많은 문화들이 종말을 고하며 역사속으로 스러지고 있다. 


 
 

'우리 문화'하면 촌스럽고 투박하고 불편한것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지금 한창 북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각의 개성을 살린 소점포들과 식당과 카페들처럼 '가장 나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포스트 모더니즘 기조 아래 

우리 것을 현대 사회에 맞게 재해석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속의 당당한 우리의 모습이 될것이라 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