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다 2012. 6. 23. 16:36

먼지를 털어 다시 본 창조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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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포스팅에서 인생이라는 서랍에 창조성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자 하는 다짐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 창조성을 서랍에서 꺼내어 먼지를 털어 다시 본 창조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우주에 대해서 신비함을 가지고 궁금해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심지어는 우주과학계에서 이 신비하고 놀라운 이 우주에 대해서 연구하고 여러가지 가설들과 이론들을 세워 모두가 궁금해하는 우주의 원리들을 알아내려고 몸부림친다.





정말 많고 다양한 이론들을 가지고. 다중우주론, 빅뱅이론, 인플레이션 우주론, 끈이론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주를 알아낸다. 


이렇듯 우주는 인간에게 신비한 공간이다. 우리나라에도 우주에 다녀온 이소연 씨가 있는데, 우주에 가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한 번 우주를 보게 되면 '누군가 이 우주를 만들었고 그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한다. 우주는 인간에게 그만큼 경이롭고 알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인간들의 입장에서 경이롭다는 우주를 만든 존재를 소개하려고 한다. 창조주. 우주를 누군가 만들었다면 세상과 사람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확신하는 바가 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다. 이제껏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어떤 생각과 경험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믿는 바, 하나님이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경이로운 우주와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과 사랑하려고 세상을 만드셨고 이것은 우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고, 만들어진 누군가는 자신을 만든 존재를 닮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앞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경이롭게 생각해 마지 않는 우주를 만드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분을 나는 나를 만드신 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성품을 닮도록 되어있고, 그래서 나는 나의 창조성이 얼마든지 발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정의하는 창조성이다. 

우주와 세상을 사람과 사랑하려고 만든 창조주가 만든 나는 창조주의 성품을 닮았다. 그래서 창조성은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 이것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Essay 2012. 6. 13. 14:18

새로운 로드스쿨러(Road Schooler)의 이야기




  난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 대학이라는 (결국 인간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의 가치가 있고 없음을 결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학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졌던 시대는 지났다. 소위 sky라고 불리우는 마치 수험생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에 있는 듯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고민있는 자퇴와, 고졸의 학력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몇몇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낸 흐름이 이런 시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홈스쿨링(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는 재택교육)에 대한 책을 읽는 중에 궁금증이 생겨 웹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재밌는 단어가 있다.



로드스쿨러


: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공간을 넘나들며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또는 스승이 있는 공간이면 세상의 모든 곳이 배움터라는 생각을 하는 자기주도학습자들이 스스로를 명명하는 이름.



  이 단어를 알고 나서 나도 나 스스로를 로드스쿨러로 인식해보았다. 사실 나는 로드스쿨러가 지칭하는 연령대나, 포함하는 범위에서는 많이 벗어난다. 내가 로드스쿨러가 된 시기는 20대고, 학습의 범위라고 한다면 나는 내 인생의 범위 전체를 보고 나를 로드스쿨러라고 인식해보기 시작했다.





20대 로드스쿨러의 이야기


  나는 고졸이다. 서울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여고를 졸업한 이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을 제외한 다른 어떤 자격으로 캠퍼스를 밟아본 적이 없다. 아, 작년에 한 번 있었다. 

나는 그저 내 이야기가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고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수능원서를 넣었는데 가,나,다군 모두 떨어졌다. 그 때 중국에 가 계시던 아빠가 메일을 보내셨다.




  대학이 떨어졌다고 말할 틈도 없이 중국어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 꿈은 중국에서 무언가를 하는 거라는 생각을 중학생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대학교육이 생각보다 내 가치의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은 것도 영향이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강남에 있는 중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서 2년동안 공부하게 되었고, 이 시기가 학업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좋은 선생님들과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학원의 분위기,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고등학생 시절 생기게 된 누군가 시켜서 하는 힘든 억지공부라는 인식을 완전히 깨주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나만의 공부방법을 알게 되기도 했다.


  사실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학원을 다닌 것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독학을 하기 위해 학원을 끊은 시기까지 학업적으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년 중순까지 2년반의 시간동안 매우 힘들었던 시절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길을 걸으면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이 글의 핵심이다.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나는 분명 아빠의 제안으로 이 길을 걷게 되었지만, 누군가 질문을 하면 다행스럽게도 관심분야가 있는 사실로 포장하며 둘러댈 수 있는 어쩌면 운 좋은 로드스쿨러였는지도 모른다. 관심분야가 있어서 이 길로 접어들기 쉬웠던 것은 맞지만 내 안에 주도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자신도 없었고 이렇다 하게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이유와 확신이 없었다. 이것이 없으니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정말 그랬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냐고 물으면, 머릿 속이 하얘지고 눈 앞이 캄캄해지고 온 몸이 굳는 물리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 앞가림도 못하는 20대인 나의 처참한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다.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답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그저 내 삶을 묵묵히 걸어나갔다. 즐겁고 재밌게 그러나 우직하게 내 삶을 살아나갔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어떻게 이 길을 결정하게 되었든지 내 삶이니까 불평않고 즐겁고 우직하게 살아간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한 길이라고, 남들이 말하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난다고 도망가거나 피할 것도 없었다. 원래 하라면 더 안하는 청개구리 습성은 누구나 있을테니까. 

  실은 이게 무서운 거였다. 회화 1년 우직하게 배우고, 신HSK공부해서 5급까지 획득하고, 지금은 내 재능을 키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내 관심분야니까 이렇게 우직하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인데 생각해보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원래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건가 싶다. 잘난 척이 아니라 내 꿈에 대한 마음을 중학생 때부터 지켜내면서 어떤 상황이 되든 그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내가 살면서도 이렇게 가능한가 싶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이 작년에야 나를 보며 그런다. "이제 대학을 다닐 자격이 되는 것 같아" 학교를 안 다니는 사람에게는 학교를 다니는 사람보다 더 진득하게 자기만의 길을 걸을 줄 알아야 한다. 주도성이 더 강해야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삶을 살다보니 "왜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라는 질문에 조금씩 당당해지고 나를 아찔하게 만들었던 그 느낌은 사라지고 있다. 

  

  나는 내 공부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 시기가 남들이 보기에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것과 같지만, 나에게는 이 길이 나를 발전시키고 나를 더 진득하게 내 길을 걸을 줄 아는 사람으로, 주도성이 강해져서 내 마음을 잘 지켜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내 인생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이 질문에 대한, 이 시기를 살고 있는 나의 대답이다. 


  나도 한 때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여전히 오랜 기간 그 답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이 길을 걸었던 것보다 더 모진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의 이런 일탈은 나름 가치가 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 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를 만나다 2012. 5. 30. 20:35

낡은 서랍 속에서 꺼낸 크리에이티브, 창조성에 대하여




 이것은 내 개인블로그 메인이다. 어디나 자신만의 공간에서는 그 사람의 취향이 묻어나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이것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디자인, 이건 티스토리 스킨 페이지에 있는 디자인이다. 티스토리 스킨 디자인 중에 괜찮은 게 꽤 있다. 이제껏 글로 써 본 적은 없지만 나는 내 블로그 스킨에서처럼 세련되고 깔끔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좀 주관적으로 표현해본다면 마치 애플 사에서 내놓은 McBook Air를 처음 실제로 보았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을 세련된 디자인을 보며 느끼고 그걸 즐긴달까. 

 나는 디자인이나 창의적인 발상에 '웃프다'는 표현처럼 어중간하게 말하지 않는다. 나를 아는 지인들은 평소 내가 마치 '으헤헤~'하는 느낌으로 다녀서 알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디자인과 발상의 창의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꽤나 취향 강한 사람이다. 왠만한 창의력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한다. 어릴 때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좋은 영상과 아이디어, 좋은 사진들 덕분에 유연한 생각이 가능했었다. 이렇게.





 내가 고2 때 똑딱이를 가지고 학교가 끝나고 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몰랐다. 나는 사진찍는 게 재미가 있으니 이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게 크리에이티브 있는 거라고. 그래서 여전히 사진찍는 거 좋아하고 구도도 꽤 괜찮은데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기술이 없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함께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고, 평생 가족이 될 사람들을 만났다. 평범한 스무살로 살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하고, 그 곳에서 내 삶의 가치를 깨닫고, 이제 내가 무엇을 준비할지 알고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이 시간들이 나에게 참 가치있었다. 그래서 나도 서랍 속에서 꺼낸 창조성을 가치있게 사용하고 싶다. 참 재밌게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걸어온 길을 알고 있는 나의 지인처럼 나도 지금 이 말을 할 수 있겠다. "이제야 창조성을 폭발시킬 공부를 할 자격이 되는 것 같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시간들을 걸어온 것 같다. 그 때는 내가 이 공부의 필요성을 알지 못했지만 이제 서서히 내 안에 숨겨진, 그야말로 서랍 속에 처박혀 있던 나의 재능을 발전시키고 정말 그것을 가치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어졌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내 한 달란트라는 것을, 이제는 없는 취급하지 않고 제대로 사용하고 싶다. 정말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창조성을 폭발시킬 동기부여가 그동안 되지 않았던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오빠가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발전시켜왔기에 내 재능이 묻혔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에게 나를 표현하지 않았을 뿐. 기대된다. 내 재능과 감각이 어디까지 쓰일 수 있을지, 그것은 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게 될지. 

 나는 어릴 때부터 좋고 감각적이고 멋진 영상과 사진과 디자인을 보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이것을 숨기지 않을 거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던 이 재능을 가지고 내 안에 심겨진 가치들을 표현해내보겠다. 그리고 세상을 바꿀 거다. 마치 이전과는 전혀 다른 DNA를 가진 사람이 된 것처럼(New Breed).